체스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은 언제일까?
긴 수순의 강제 체크메이트 수를 찾았을 때, 나보다 훨씬 강한 상대를 이겼을 때, 프로모션으로 4개 퀸을 만들어서 상대를 농락할 때 등등 많은 순간이 있지만, 필자가 느끼기에 최고는 화려한 희생 플레이다.
며칠 전, 친구와 10분 레피드 체스를 두던 그때, 엄청난 아이디어가 내 머리를 스쳤다. 정말 재미있는 포지션이라 포스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레피드에서 웬만한 퍼즐보다 훨씬 흥미로운 포지션이 나왔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도 하다.
너무 재미있는 그 포지션을 공유라고 쓰고 자랑 하고자 한다. 필자는 흑으로 플레이하고 있다
1.

이 포지션에서 처음에 순간적으로 들었던 생각은 ... Rxd4 이후, Qxd4 Bxh2+ 디스커버드 어택이었다. 그러나 f4 폰이 존재하기 때문에 비숍길을 막아 불가능한 전술이었다.
그래서 Rxd4는 포기하려던 찰나... 디스커버드가 불가능해도 룩으로 폰을 그냥 잡아도 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고(말 그대로 수계산이 없는 그저 느낌이었다), 잠시 뒤 엄청난 아이디어가 나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룩을 희생했다.
2.

폰을 잡으며 지켜지지 않는 칸으로 룩을 이동시켰다. 언뜻 보기엔 그냥 Qxd4를 해도 될 것처럼 보인다. 상대(내 친구)도 매우 당황한 듯했으나 큰 의심 없이 내 룩을 잡았다. 아마 내가 처음 생각했던 것처럼 f4 폰 때문에 디스커버드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냥 잡았을 것이다.
3.

직전에 룩을 던진 것에 그치지 않고 비숍마저 던지며 들어갔다. 상대는 이번엔 좀 고민을 하는 듯했다. 이 순간에 대해 나중에 이야기를 들어보니 "얘가 왜 던지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금은 백 퀸이 킹과 함께 핀에 걸려 있기 때문에 비숍의 공격을 피할 순 없고, 비숍을 잡는 Qxc5가 실질적인 강제 수이다.
4.

그래서 백 퀸은 비숍을 잡았다. 또한 동시에 내 백랭크를 위협하고 있다. 하지만 그러면서 생긴 변수가 있으니...
5.

백의 퀸이 d파일에서 빠져나오면서 백랭크 체크를 허용하게 되고, 흑의 다음 수는 Kf2 밖에 없다. 즉 강제수이다
6.

백 킹이 f2로 나오면서 마지막 한방을 위한 무대가 결국 완성되고야 만다...
7.

나이트의 로얄 포크로 백의 퀸은 임종을 맞이하게 된다. 룩과 비숍의 대가다..
기물 희생 전술이 매력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희생 전략이 가져오는 매우 높은 긴장감이 아닐까 싶다. 희생 전술이 시작되면 양측이 매우 절박하게 수를 탐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특히 당하는 쪽이 그런데, 희생 플레이를 연다는 것은 어느 정도 수 계산이 끝났다는 것이고, 이를 당하는 사람은 이 강력한 전술을 벗어나기 위해 상대 수 계산에 허점이 있지는 않은지, 벗어나서 카운터를 날릴 수는 없는지를 어떻게든 찾아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모든 수가 마찬가지지만 희생 전술은 특히 정교한 설계가 필요하다. 중간에 단 하나의 수라도 잘못 계산되었다면 큰 손실과 패배로 이어지지만, 성공한다면 희생 대비 매우 큰 이득을 얻기에, 사실상 게임의 승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수이기 때문이다.
기물을 정산해 보면 룩+비숍 : 폰+퀸의 교환이 완성되었고 큰 이득을 취했다. 그리고 당연히 게임은 내 승리로 끝났다. 해당 플레이의 이득의 정도와는 별개로(그전부터 이미 기울어진 게임이기도 했다), 나이트 포크까지 보고 룩, 비숍의 연속 희생 전략을 실제 게임 중에 생각해 낸 내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근데 1번의 룩 희생은 최선의 수는 맞았는데 스톡피시가 느낌표까지 붙여주진 않았다... 이 모든 프로세스의 시작인데 어째서..? 사실 비숍 희생보다 더 찾기 힘든 수가 아닌가??)
너무 재미있는 포지션이었고, 이 정도면 체스닷컴에서 가져가 퍼즐로 제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상, 나의 인생 플레이 리뷰였다.